문학웹진 LIM LETTER 006 👾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LIM

2023. 9. 8.

2023.09.08. LIM LETTER

006 여섯 번째 소식

안녕하세요, LIM 독자 여러분.

드디어 수록작이 모두 공개된⎯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2023년 가을)

단행본 작업 소식과 함께 온

여섯 번째 레터입니다.

어느덧 9월, 가을의 입구에 와 있지만

아직 여름의 더위와 습기가 남은 듯해요.

넘어가는 듯 다만 이어지는 이 시간을

어떤 속도로 지나고 계신가요?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webzine LIM

LIM LETTER는 매월 첫째 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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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종료 소식 👾

완결 작품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서고운 장편소설

비슷한 속에서 풀이 자란다. 계속 자란다. 나는 풀을 베기보단 그 옆에 또 심기를 선택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그럼 무엇이든 자라나니까.

마지막 문단에서

순지는 풀을 후 불었다.

불고 나니 사라져 그만이었다. 순지는 기지개를 켰다. 일 센티만 더, 일 센티만 더. 다 뻗었다고 생각될 때 일 센티만 더. 순지는 눈을 감고 손가락을 저 멀리멀리 보내보았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정글로 가닿는 듯했다. 손끝은 순지의 정수리에서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지만 일 센티는 생각보다 길었다.

완결 작품

무심과 영원

최추영 단편소설

그 순간에는 왜 알 수 없을까요.

지나간 장면은 돌아오지 않지만 기억해줄 당신의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의 자세로. 이 소설과 함께 여름을 잘 떠나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풍경은 좌우가 아니라 사방에서 흐르고 있다. 두 사람은 나무의 이름을 나열하며, 풍경을 완성해나간다.

키 작은 사철나무의 잎사귀가 반짝거리고, 플라타너스의 맨 꼭대기에 있는 넓은 잎사귀가 부채처럼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한 풍경 속에서 계속 밀려오는 파도처럼 움직이는 잎사귀들을 떠올린다.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에 무수한 관계들이 있다고 느끼지만,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움직인다. 숨을 내쉰다. 온몸의 힘을 푼다. 쓸려나가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완결 작품

끝말잇기

성수나 단편소설

하나, 나이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달라진다는 것.

그저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인데.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둘, 아기들.

'아기'라고 말할 때면 입이 양옆으로 벌어지면서 꼭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좋으면서도 아프다.

마지막 문단에서

"다음."

지경이 둘레길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음영. 목소리가 답했다. 지경이 계단을 하나 더 내려갔다. 영원. 원래. 내기. 기지개. 개나리. 이파리. 이제. 제자리. 이......웃. 웃음. 음료수. 수조. 조각. 각오. 오......레오. 오랫동안.

누구야? 목소리가 물었다.

"짝꿍."

지경이 답하자,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꿍꿍이.

지경은 '이'로 시작하는 단어를 생각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완결 작품은 메인 페이지 하단 또는 [완결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새 연재 소식 📃

MON

초 단위의 동물

서이제 단편소설

작가의 말에서

나의 동물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물의 한 종으로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나무늘보를 촬영한 실험영화를 본 적이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나무늘보를 보다가, 극장을 나오니 갑자기 온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무늘보에게 인간의 시간을 기대했다는 것을, 나무늘보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기를 기대했다는 것을.

동물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기.

그런 인간의 시간을 다뤄보고 싶었다.

작품에서

08:59

저주인가. 분명한 건, 언제부턴가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각을 해봤자 좋을 게 하나 없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도통 이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마 오늘도 지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간에 성수대교 위를 달리고 있다면 그럴 것이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가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시계 따위는 볼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강을 바라보았다.

11:03

내가 안쓰러운 눈으로 벤을 보고 있을 때, 에이든이 파티션 밖으로 목을 쭉 내밀었다. 그는 공대 출신 개발자로 입사할 때부터 거북목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피시앤칩스를 즐기더니 결국 저렇게 되었네요. 내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하자, 에이든이 말했다. 피시앤칩스는 산업혁명의 산물이자 노동의 음식이죠. 저는 벤이 영국에서 피시앤칩스만 먹은 건 일종의 메시지였다고 봐요. 이것들아, 나는 싸구려 고열량 피시앤칩스 기름에 절여지고 있는 미친 노동자야. 뭐 그런 메시지랄까요?

11:53

고장인가 했는데 0시를 지날 때마다 그러는 걸 보니 원래 저런 시계인 듯했다. 잠깐씩 멈추는데도 시간이 정확하게 맞는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친구, 즐거운 여행 되기를 바라. 우리는 그곳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영원히.

12:32

그런데 이걸 이제 어떻게 해요?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데. 내가 묻자, 에이든은 화단 같은 데 옮겨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주었다. 루나는 도심 속 화단에서 달팽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고 하루 만에 매연에 질식해 죽을 거라고 했다. 얘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걸까. 여느 때와 같이 그저 상추로 실컷 배를 채우고 있었을 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식판 위에 있는 거잖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먼 곳까지 끌려와 죽을 운명에 놓이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나저러나 죽을 위기에 놓인 달팽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학웹진 LIM 작가 모아보기

📃 9-10월 연재 예고 📃

coming soon

농부의 피

정기현 단편소설

좀 더 일찍 자신의 피에 흐르고 있는 운명에 대해 자각할 수 있었다면 보다 행복했을까?

coming soon

제목 미공개

심완선 X 소영현 대담

심완선 SF평론가와 소영현 문학평론가의 가감 없는 대담. 지금 이곳을 가로지르는 화제작과 의제들. "SF, 어떻게 읽으셨어요?"

👾 👾 👾

오랜만에 실어 보내는

편집자의 일기 같은 편지

안녕하세요, 문학웹진 LIM 독자 여러분.

여름을 떠나보내는 듯한 세 편의 완결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3월부터 시작해 쉴 새 없이 달려온 웹진 LIM에는 어느덧 열네 편의 완결 작품이 이채로운 숲을 이루기 시작했어요.

투명하고 선연했던 두 작품, 성수나 작가님의 「끝말잇기」와 최추영 작가님의 「무심과 영원」은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2023년 가을)에 수록됩니다. 서고운 작가님의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는 내년 봄 출간하는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3 (2024년 봄)으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첫 회를 공개한 서이제 작가님의 「초 단위의 동물」은 단행본 작업 중인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2023년 가을)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애매하게 조금씩, 지각을 반복하는 '나(에바)'와 회사 동료들(조이, 루나 ,벤, 에이든, 맥스)의 현실 밀착 초 단위 오피스 기록⎯이자 곧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소설인데요. 작가님은 '기계적 시간이자, 노동을 위해 발명된 시간'인 초 단위의 시간에서 벗어나 '동물로서의 인간'의 시간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초 단위 시간을 다투는 데 지쳐 있다면, 이 소설 속으로 들어와보세요.

느리게 온 가을의 LIM은 첫 문장만 살짝 공개한 정기현 작가님의 단편소설, 그리고 SF평론가 심완선 선생님과 문학평론가 소영현 선생님의 흥미로운 대담으로 시작합니다. 10월 첫째 주 금요일부터 매달 대담 1회를 격주로 나누어 연재하는 장기 프로젝트예요. 사전 미팅에서 나눈 이야기들⎯지금 이곳을 가로지르는 한국 SF 지형, 엇갈리고 교차하고 다시 맞닿는 두 선생님의 시선⎯만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답니다. 그 이후로도 이어질 연재 소식들은 차차 전해드릴게요.

매주 오전 열 시. 꾸물꾸물 선명하게.

당신에게 딱 맞는 속도로 찾아옵니다.

추신

문학웹진 LIM을 따라 읽어오고 계시다면,

독자 리뷰 공모가 늘 열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늘 여기에서 기다리는 편집자 드림

🕸️ 출간 예고 🕸️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2023년 가을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 해설 민가경

다가오는 10월, 문학웹진 LI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