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늦가을 출간한 '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림: 초 단위의 동물』 북토크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11월의 마지막 날에는 진부책방에서, 눈 내린 12월 넷째 주에는 문학살롱 초고에서요. 밀도 있는 시간을 이끌어주신 민가경 평론가님과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작가님 그리고 저마다의 물음을 안고 찾아와주신 독자 분들이 있어 온전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얼굴을 가까이하고 모여 앉은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다름 아닌 몸과 거리감에 관한 것이었어요. 때로 더 닿아보기 위해, 때로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늘 다른 방식의 거리감이 필요하겠지요. 어쩌면 일 년 전의 연말과도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몸에 아로새겨진 거리감이 있는지도요. 그럼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여기 모인 것이 참 신기하다, 신기하고 안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프닝 나이트」는 문학-예술의 소수자성과 당사자성을 둘러싼 논의들 이후의 어느 장면입니다. 김병운 작가님이 언젠가 나를 걸고 넘어지던 것들을 제쳐두고 나아가게 되는, '나'를 초과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요. 구체적인 '나'의 몸으로 비로소 '나'를 넘어서게 되는 순간을요.
서이제 작가님은 가속화되는 세계에 대한 제어 장치로서의 문학-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초 단위의 동물」은 인간의 '시간'을 해체하며 우리를 문득 멈춰 세우고, 다른 곳으로 이끕니다. '시간을 들여 일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노동 감각은 얼마나 이상하고 또 익숙한 것인지요.
「끝말잇기」는 입을 크게 벌린 아이들의 목구멍, 그 캄캄하고 깊고 투명한 공간으로 멀리멀리 나아갑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편집하는 동안 마음속 무엇이 내려앉는 듯한 안도감을 느껴왔어요. "한 번만 다시 놀아줘"라고 귀신-아이들에게 초청을 청하는 성수나 작가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밀 작가님은 다채로운 관계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대화를 이어주셨어요. 우리는 어떻게 파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서로의 곁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소설에서 어떤 환상을 투사하는 데 있어 일련의 제동을 두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주셨습니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에서는 그것이 "진짜(들)"에 대한 일종의 폭로이자 전환으로 드러나지요.
안윤 작가님의 「핀홀 pinhole」 역시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으로부터 지워진 존재에 가닿는 다리를 직조합니다. 몸(들)과 만난 경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님의 찬찬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거리감을 인지할 때 비로소 발화되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를 완전히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용기에 대해서요.
마주하는 용기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일에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우리는 언젠가 저마다 몸으로 겪어보았지요. 이유리 작가님이 "실패자 둘이(또는 하나가) 맥주를 마시는 이야기"라고 축약해주신 「달리는 무릎」에 많은 븐들이 접속할 수 있는 이유일 거예요.
「무심과 영원」 속 '진주'와 나란한 몸으로 최추영 작가님이 이야기하셨듯 이 세계는 대체로 늘 불확실하고,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믿을 수 없어지는 순간을 목도하곤 합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많은 것이 빈번하게 무용해지고요. 그렇지만 그대로 머무는 것도 아예 벗어나는 것도 아닌 몸으로-
우리는 여기에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에 "있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때로 무너지는 마음이 있더라도
작가님들께서 당부하셨듯
사랑과 나아감을 포기하지 않으시기를.
안팎으로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새해 지내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