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 LIM LETTER 005 🎐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LIM

2023. 8. 3.

2023.08.03. LIM LETTER

005 다섯 번째 소식

안녕하세요, LIM 독자 여러분.

네 편의 완결, 네 편의 연재

그리고 독자 리뷰와 함께 온

한여름의 다섯 번째 레터입니다.

내리쬐는 더위가 연일 이어지는 요즘

가까이 떠오르는 감각은 무엇인가요?

자라나는 풀, 습한 창 바깥에 맺히는 물방울.

방바닥에 피부가 붙었다가 떼어지는 느낌.

또는 더운 공기를 가르는 유연한 동작.

여기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모두의 남은 여름도 건강히, 무사하시기를 기원하며.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webzine LIM

LIM LETTER는 매월 첫째 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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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종료 소식 🎐

완결 작품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이하진 장편소설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말에 가까이 방향을 틀었던 이 이야기가 부디 당신에게도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향한 당신의 관심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마지막 문단에서

"미르 씨, 서해수예요. 언젠가 RIMOS에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죠."

그러나 미르는 알지 못했다. 그 모든 기적도, 결국 자신의 행적이 만들어낸 거라는 걸.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 대한 기적이라는 걸.

Theory for Everyone. 모든 사람에 대한, 그렇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 이론. 그 이론은, 그런 이름을 갖게 된다는 걸.

완결 작품

오프닝 나이트

김병운 단편소설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이 되기를 원한다고, 내게는 자랑도 인정도 투쟁도 필요 없는 관계가 절실하다고 말한다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건 나를 안타까워하던 너의 표정과는 얼마나 다를까.

나는 고무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생각들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전부 다 먹고 남은 포장용지와 휴지를 하나로 똘똘 뭉쳐 아주 작디작은 공처럼 만들면서 대오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완결 작품

핀홀 pinhole

안윤 단편소설

마지막 문단에서

첫새벽의 푸른 어둠 속에서 보라가 승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몸은

쉴 새 없이 떨리며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끊임없이 떨리며

행복의 위치 이동을 쫓는다

행복하게 행복한 행복의 행복은 행복이

떨리는 동안은

하여 행복을 산다 오로지

완결 작품

대체근무

성혜령 단편소설

마지막 문단에서

남자의 머리가 임 주임의 손에 닿았다 멀어지고, 또 닿았다, 멀어졌다. 한동안 남자는 자기가 머리를 벽이 아니라 손에 찧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천천히 왕복 운동을 하던 남자가 벽 아래로 미끄러졌다. 남자는 휴대폰을 임 주임에게 건넸다. 한 번만, 자세히 봐주세요. 여기에 모든 정보가 다 있어요. 임 주임은 빨갛게 부은 손으로 남자의 휴대폰을 받았다. 네. 임 주임은 그렇게 말했다.

단강은 처음으로 임 주임이 괜찮기를 바랐다.

완결 작품은 메인 페이지 하단 또는 [완결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새 연재 소식 📃

MON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서고운 단편소설

작가의 말

그러니까,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싶을 때. 비가 많이 오는 날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마시멜로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일 뿐. 현실은 언제나 끈덕져서 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 올여름도 여느 때와 비슷하다. 비슷한 속에서 풀이 자란다. 계속 자란다. 나는 풀을 베기보단 그 옆에 또 심기를 선택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그럼 무엇이든 자라나니까.

작품에서

왜 나의 지구는 맨날 망할까.

순지는 드디어 궁금해졌다. 한 달쯤 전부터 순지의 꿈속에서 지구는 각양각색으로 망해갔다. 오늘 꿈에서 지구는 온 사방에서 자라나는 풀 때문에 망했다.

오늘은 조금 아쉬웠다. 만능 제초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제초제 뚜껑의 어린이 안전 잠금장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풀은 아스팔트에서, 전신주에서,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가구에서, 고양이의 발톱에서 마구 자라다가 마침내 순지의 손가락에서 자라나기 시작했고, 제초제 뚜껑을 열기 전에 순지를 뒤덮고 세계를 덮어버렸다.

6일 만에 가지는 휴무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알찬 하루란 무얼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가습기 물통 씻기. 안 쓰는 앱 삭제하기. 산책하기. 산책하는 김에 유영이가 보낸 쿠폰으로 커피 한잔하기. 급여 확인하고 적금 통장과 용돈 통장에 나누어 이체하기.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곰팡이 다시 말하기. 순지는 어려운 일부터 해치우기로 했다. 네, 청암빌라 206호 사람인데요, 곰팡이 때문에요.

아니 왜 잡아가냐고.

유영이 주장하는 한강의 괴물은 별로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어느 날은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을 잡아간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가장 커다란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을 잡아간다고 했다. 어느 날은 그냥 아무나 잡아간다고 했다. 누굴 잡아가든 수영을 못하는 사람만 골라가서 던전에 다녀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외로워서 그럴 거다.

FRI

끝말잇기

성수나 단편소설

작가의 말

하나, 나이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달라진다는 것. 중학생 때, 10대만 들을 수 있다는 주파수로 핸드폰 벨 소리를 설정해두고 모두가 숨죽였던 때가 있었다. 교실 가득 벨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우리는 모두 고개를 들었는데 선생만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칠판에 계속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몇몇이 웃자 그제야 선생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때 느꼈던 유대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인데.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둘, 아기들. 끝없는 놀이를 하면서 솜사탕이 녹듯이 사르륵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아기 귀신들. 그들이 겪은 삶은 제쳐두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스스로가 비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아기'라고 말할 때면 입이 양옆으로 벌어지면서 꼭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좋으면서도 아프다.

작품에서

청진판을 쥔 지경의 손이 한곳에 멎었다. 둥치의 한가운데, 나이테의 중심이었다. 아이들이 숨죽인 채 지경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선생이 손을 뻗어 기자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주변이 마법처럼 조용해졌다.

지경이 눈을 떴다.

"고지."

세상이 번쩍 켜지듯 플래시가 터졌다.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방금 전 그 목소리는 지금껏 고지를 찾아왔던 것 중 가장 크고 강했다. 목소리를 번개처럼 고지의 정수리에 내리꽂혔고, 고지의 존재 자체가 목소리에 꿰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여러 갈래가 아니라 한 갈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지는 그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듣기 좋았다.

목소리도 고지의 변화를 느꼈는지 간간이 고지를 찾아왔다. 주로 고지가 혼자가 됐을 때 찾아와 불쑥 말을 걸었다. 고지가 책을 읽고 있으면 전부 거짓말인 거 알지? 하고 물어왔다. 고지가 혼자 계단을 오르면 지금 몇 층이야? 물어왔다. 고지가 잠들기 전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 걷고 있으면 달려볼래?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고지는 대답하려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고지는 목소리를 잊을 수 있는 하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하나. 때로는 책 속 단어이기도 했고 계단에 내리쬐는 햇빛이기도 했고 이불에 있는 무늬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를 생각하다 보면 목소리는 사라지고 고지는 다시 혼자가 됐다.

고지는 점차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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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연재 예고 📃

첫 문장 미리 읽기

coming soon

무심과 영원

최추영 단편소설

전화벨이 울리다가 끊겼다.

예감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침묵을 가로지르고 내면에 도달하는 말을 하는 사람.

coming soon

초 단위의 동물

서이제 단편소설

08:59

지금껏 나는 수많은 택시 기사님과 함께 성수대교를 건넜다. 결국 오늘도 다리를 건너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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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 A

[힘센얼룩말]

오프닝 나이트

너무 재밌었다! 퀴어 소설을 쓰는 작가는 퀴어인가? 소설 속 내용은 곧 작가의 경험인가? 이러한 질문에 본인만의 답을 제시하던 김병운이 이번에는 예술가의 당사자성 담론까지 추가하였다. 당사자냐는 독자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응답하는 소설가! 당사자라고 한다면 작품에 진정성이 생기고, 아니라고 답한다면 진정성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퀴어 소설은 퀴어 작가가 쓴다'라는 명제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면 '퀴어 소설을 쓴 작가는 모두 퀴어다'가 성립한다. 소설을 곧 작가로 받아들일 때 생기는 문제들! (그렇다고 퀴어가 아니라고 확고히 부정하면 그것도 문제고!) 당사자성이 결여되어 있어 진정성이 없을까 고민하는 예술가들! 왜 하필 퀴어 소설에서만 그렇게 사람들은 당사자성을 확인하려고 할까? (이미 논쟁적이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관통하는 김병운식 이야기!) 대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이 거대하고 지지부진한 복잡한 문제가 고민일 때 김병운의 소설을 읽으면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듯한 기분이다!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 '질문' 자체에 더 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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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 B

[파도🌊]

핀홀 pinhole

사람 몸은 엄청 커다란데 고작 바늘에 손가락 한번 찔렸다고 아프다 우는 소리를 낼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모든 건 꼭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라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믿음에 ‘얼마나’라는 아주 조그마한 구멍이 생긴 것도 그래요. 정말 바늘 구멍만 한 의문이지만, 그 의문은 집안 구석구석 놓인 집쥐들처럼 손 쓸 수도 없이 여기저기 생겨납니다. 두 사람 앞에 생겨난 작은 구멍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애초에 실로 꿰어서 막을 수는 있는 것일까요. 제 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작은 구멍이 나진 않았나 살펴보게 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