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LIM 2023.07.03. LIM LETTER
004 네 번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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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LIM 독자 여러분.
장마와 함께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몸도 마음도 무탈하신지요.
LIM도 다음 계절로 넘어가듯
새로운 마침과 꾸준한 시작을 준비합니다.
세 편의 완결 소식 그리고
네 편의 새 연재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webzine LIM
LIM LETTER는 매월 첫째 주 발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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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작품
멀어지는 기분
윤혜은 장편소설
"우연한 타이밍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기억들은 하나같이 '지금'을 위해 멀리서부터 달려온 것 같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엔 반드시 한 번 이상의 삶을 사는 셈이 아닐까." |
마지막 문단에서
방콕의 야자수 아래를 정신없이 헤맸던 밤, 땀을 닦으며 올려다본 머리 위에는 검푸른 하늘보다 더 짙은 채도로 넓고 긴 풀의 장막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그때 정원은 그걸 그대로 덮고 한숨 자고 싶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소철은 사는 내내 겨우 정원이 보여주는 사연만큼을 품게 될 테지.
잘 자란다는 건 뭘까. 그건 얼마나 긴 그늘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너른 그늘을 가진 존재만이 무언가를 쉬어가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정원도 두 뼘만 한 소철을 보며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넌 그냥 자라. 내가 잘 자라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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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에서
같은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것으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다행인 걸까. 그에게 메일을 쓴다면, 사실 나는 내가 안락한 곳에 있는 동시에 안락하지 않은 곳에 당도하길 바란다고 고백할 것이다.
하지만 사선으로 스케이트 날을 부드럽게 죽죽 밀자 안정적인 자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남자에게 날을 미는 법을 몇 번 알려준 뒤 멀어졌다.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남자에게 돌아가 자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멀어졌다.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한 뒤에 광장에선 어디로 가든 나가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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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작품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아밀 단편소설 |
마지막 문단에서
영민은 술잔을 탁 내려놓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업체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한 다음, 리아의 렌털 관리 페이지에서 '평생 구매로 전환' 버튼을 눌렀다. 리아를 구매하는 데에는 두 달치 월급이 들어갔다. 12개월 할부로 했으니 앞으로 1년 동안은 주머니가 빠듯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리아는 밥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시고, 직구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원하지도 않았다. 리아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 없었다.
리아가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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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작품은 메인 페이지 하단 또는 [완결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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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난 겨울과 봄, 나와 대치했던 건 감추려는 마음이었다. 쓰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 마음. 이건 절대로 쓰지 말라고, 어디 한번 쓰기만 해보라고 일단 멈춰 세우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으리라는 걸 느꼈을 때, 그 마음은 내게 보여지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는 한 그 욕망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힘을 가진 그림자처럼 존재하리라는 걸 느꼈을 떄, 어쩌면 나의 진실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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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순간 대오는 나만 볼 수 있는 각도로 죽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나는 대오가 싫은 척 아닌 척해도 이런 관심과 교류에 늘 목말라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약간은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대오는 남자를 따라가면서도 내게 기다려, 미안해 입 모양으로 말하고, 나는 점차 멀어지는 대오에게 역시나 입 모양으로 알았어, 괜찮아, 한다.
어, 그렇지.
하지만 대오와 통화를 마친 뒤에,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따갑고 서늘하게 느껴지면서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감각이 뒤늦게 온몸을 훑고 지나갔을 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그냥 누군가의 무지를 탓하면 그만인 일일까.
일백 퍼센트의 허구를 써도 그게 실재이자 경험처럼 읽히길 원하는 건 일종의 너의 전략인데, 그건 언젠가부터, 아니, 정확히는 네가 퀴어 당사자라는 걸 증명하는 게 중요해진 다음부터, 네가 쓰는 것이 퀴어로서의 진정성과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최근의 담론 안에서 충분히 주목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게 절실해진 다음부터 네가 선택한 자구책인데, 이런 시도들이 너의 문학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곁의 우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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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재작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자료집 발간을 위해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일곱 명을 인터뷰했다. 한 사람을 두 번씩 만나 그들 삶에 귀를 기울였다. 유일하고 소중한 증언들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매번 아프게 기뻤고 회르 거듭할수록 나의 가장자리가 환하게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내 안에 깊이 박혀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들의 삶이 재연되거나 소비되지 않도록 애썼다. 그것이 내가 그 일곱 명에게서 받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 믿으며,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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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떨리는 집게손가락 끝이 코팅된 문자판의 글자를 가리킨다. 원하는 글자에 멈춰 톡, 한 번 건드리고는 다음 글자를 찾아간다. 문장은 더디게 완성된다. 쉼표도 마침표도 없다. 소리 없는 말이 길어질수록 손가락 끝이 심하게 떨린다. 숨소리가 시근거린다. 이따금 터져 나오는 신음을 닮은 괴성. 입속에 고인 침이 오른쪽으로 실그러진 아랫입술로 흘러내려 앞가슴에 떨어진다. 허공에 멈춰 있던 집게 손가락이 다시 글자를 찾아나선다. 한 자, 한 자.
하 여 행 복 을 산 다 오 로 지
그것은 여전히 뭉쳐 놓은 양말이었으므로 집쥐가 되었다기보다는 집쥐로 보였다는 게 맞겠지만 보라에겐 집쥐가 '되었다'에 더 가까웠다. 그날부터 보라 눈에는 양말 뭉치가 줄곧 집쥐로 보였으므로, 집쥐로 보이기 시작한 그 늦은 오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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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coming soon
대체 근무
성혜령 단편소설
단강에게 연구실에 불이 났다고 전해준 선배는 문장 끝에 습관처럼 느낌표를 붙이던 사람이었다. |
Mon. coming soon.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서고운 단편소설
왜 나의 지구는 맨날 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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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웹진 LIM 독자 여러분.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넘었어요. 무더운 칠월, 소진되어가는 감각과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감각이 동시에 감도는 시기입니다. 여느 때보다 많은 완결 및 새 연재 소식들을 전해드려요.
LIM의 처음부터 한 주의 시작을 함께해온 윤혜은 작가님의 『멀어지는 기분』은 그 여정을 잠시 마칩니다. '삶은 지나쳐가는 순간의 연속이 아니라, 낯설고도 익숙한 도착지에 데려다 놓는 순환의 연속'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원의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동안 긴 기지개를 켜고 몸을 뻗어 여기로 돌아온 듯한 기분입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고받으면서요.
많은 독자 분들이 애정을 표해주신 두 편의 단편, 예소연 작가님의 「통신광장」과 아밀 작가님의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역시 연재를 마쳤습니다. 두 편은 각각 내년 봄과 올해 가을 출간하는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3, 2호에 수록될 예정이에요. 새로운 물성으로 찾아올 두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세요.
한편 6월 마지막 주에 첫 회를 공개한 김병운 작가님의 「오프닝 나이트」, 안윤 작가님의 「핀홀 pinhole」은 매주 월요일, 금요일마다 이어집니다. 곧 찾아올 성혜령 작가님의 「대체 근무」와 서고운 작가님의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첫 문장도 미리 살짝 공개해요.
'잘'의 정확한 의미를 지치지 않고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안윤 작가님의 말을 빌려 LIM도 모쪼록 '잘' 나아가보겠습니다.
다음 레터는 더 다양한 콘텐츠, 연재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문학웹진 LIM과 따로 또 같이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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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곳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문학웹진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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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1 『림: 쿠쉬룩』
서윤빈 서혜듬 설재인 육선민 이혜오 천선란 최의택 | 해설 전청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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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2 (2023 가을) |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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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lim webzinelim@yolimwon.com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52 4층 열림원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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