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 LIM LETTER 001 🌊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LIM

2023. 4. 3.

2023.04.03. LIM LETTER

001 첫 번째 소식

문학웹진 LIM을 소개합니다

여기, 뚫고 나오는 이야기의 숲

‘–림LIM’은 ‘숲’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자

이전에 없던 명사입니다.

문학웹진 LIM은 등단 여부 및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여기의 젊은 작가들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입니다.
장·단편 소설, 에세이 등 신작을

요일마다 하나씩 연재합니다.

LIM LETTER는 매월 첫째 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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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연재 작품

MON

멀어지는 기분

윤혜은 장편소설

작가의 말

삶은 지나쳐가는 순간의 연속이 아니라, 낯설고도 익숙한 도착지에 데려다 놓는 순환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엔 반드시 한 번 이상의 삶을 사는 셈이 아닐까. 살아남은 어제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을 쓴다.

작품에서

살아 있다는 건 눈이 있는 존재가 아닐까. 반드시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굴절시키는 안구 형태의 눈이 아니더라도. 말하자면, 눈치를 보게 하는 눈. 그리하여 이 집 안에 자신 말고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눈.

손수건 한 장을 번갈아 쓰며 서로의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털어줄 때 공중으로 흩어지는 알알이 물방울들.

전부 보기에 좋았다.

샤워실 근처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만 비가 내린 것처럼 땅이 동그랗게 젖어 있었다.

맥 빠지는 것의 가짓수가 늘어날 때마다 얄궂게도 자란다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혜빈과 지낼 때면 자신도 무엇에든 입장이 생기는 것 같아 정원은 그런 혼란스러운 확인들이 좋았다.

TUE

바람과 햇볕의 기억

천선란 에세이

작가의 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나만이 속삭일 수 있는 말이 있다고 믿으며.

작품에서

새하얀 절벽에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어 '일곱 자매 Seven Sisters'라는 이름이 붙었다. 봉우리 중 가장 높은 헤이븐 브라우는 무려 칠십칠 미터에 달한다.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아 바람이 거세게 불면 추락의 위험이 있다는 그곳을 2019년 2월에 다녀왔다. 축복처럼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날이었다. 절벽 끝에 섰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았다.

그런 양의 발걸음을 보면 몸에 울음이 찬다. 생명의 겁 없음을, 믿기지 않는 자연의 웅장함을, 그 총합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때 느낀 지구를 향한 배신감의 울음이다.

토성만 한 고통과 슬픔 앞에서 유성의 파편 같은 내가 그 고통의 크기를 견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나의 유성 같은 파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WED

그린 레터—잎맥의 사랑 연대기

황모과 장편소설

작가의 말

떠도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을 편지로 보낸다. 잎새에 이야기를 새기듯 존경과 사랑과 연대의 마음을 담아본다.

작품에서

잎맥 패턴은 문자였던 걸까? 패턴을 언어 체계로 정리한 사람이 있었던 걸까? 해독키가 정말 있을까? 그런데 고산 지대가 아닌 곳에서 비티스디아가 자란다니, 이 사람 말을 믿어도 될까?

이륀에게는 언제나 자명한 답이 있었다. '나는 사 분의 일 쿠진이다.' 그러나 자명한 답일지언정 아무에게나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의도로 '누가' 질문했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졌다. 행여라도 악의가 포착되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륀은 아무도 없는 주말 사무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럴 때마다 이륀은 의문이 들었다. 순수함의 불순한 위력에 대해. 서슴없는 배척이 순수한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위계에 대해.

THU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이하진 장편소설

작가의 말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 싶은 말에 가까이 방향을 틀었던 이 이야기가 부디 당신에게도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향한 당신의 관심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작품에서

그러나 폭력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언어로 전해지는 평화의 형태란 추상에서 그칠 뿐 현상으로 와닿을 순 없었다. 결국 두 사람도 그 세대의 일원이었으니까.

미르는 무의식적으로 건물 주변의 흐릿한 왜곡에 집중했다. 발현자의 이능력이 남긴 자취는 다른 발현자를 이끌리게 만드는 특징을 가졌다. 발현자들에게는 시공간에 남은 그 흐릿한 뒤틀림이 잔향인지 잔상인지 모를 형태로 그저 느껴졌다.

우리가 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야 하지?

왜 안 되는 걸까, 우리는. 비단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미르는 알고 있었다. 아마 건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아니었음에도 우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FRI

달리는 무릎

이유리 장편소설

정아리 일러스트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외계인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자기의 꿈은 선생님이 아니라 행성 외교관이었고, 자기가 살던 곳은 소설에 묘사된 곳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꼭 덧붙여 달라네요. 아무튼 저는 전했습니다. 그럼 이만.

작품에서

나는 너를 기다렸어.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도무지 누군지 왜 기다렸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절박함만은 그대로 와닿아서 나도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헤매며 마주 외쳤다. 누구세요. 어디 계세요. 누구신데 그렇게 저를 찾으세요. 저를 아무도 안 찾은 지 좀 됐는데. 마지막 말을 하고 나서야 그러고 보니 그랬지, 생각하는데 서서히 세상이 흔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땅속을 뚫고 내게로 오고 있었다. 갈게, 지금 갈게.

식비도 아낄 겸 일찌감치 잠자리에 눕고서야 생각했다. 그게 어쩌면 웃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아주 오래오래 살면 인간과 다른 웃음 포인트를 갖게 되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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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웹진 LIM을 만드는 사람들

편집자의 일기 같은 편지 🌊

안녕하세요, 문학웹진 LIM 독자 여러분.

LIM LETTER를 구독해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첫 발행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에 홍보도 하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셔서 놀랍고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이제 마음껏 소문내주셔요!)

지난 이 주 동안 웹진 LIM과 함께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바쁘고도 환한 날들을 지나왔습니다. 저마다의 힘을 가진 이야기들이 하나둘 LIM 위에 자리 잡고 그 외연을 점점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요. 여섯 분의 작가님들과 한 줄 한 줄 코멘트를 주고받으며 이 작품들이 가능한 한 멀리까지, 많은 이들에게 뻗어나갈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라게 되었습니다.

교정을 하는 내내 아껴가며 읽고 밑줄을 그어둔 문장들이 많았는데요. a 작가님은 그게 작가님의 마음에 "실금 같은 빛으로 새겨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문학웹진 LIM이 서로에게 남기는 실금 같은 빛으로 무성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은 살아남은 어제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으로 매일을 이어갈 동력을 건네받으시기를. 화요일은 각자의 유성 같은 파편을 건드리는 연작 에세이 <바람과 햇볕의 기억>을 읽으며, 삶의 다음 시퀀스로 넘어갈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 수요일이면 경계 위 모든 존재들을 위한 연대기 <그린 레터>를 한 줄기씩 넘겨보시기를. 목요일마다 하드 SF 드라마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 속 견고한 설정과 기민한 감정선을 따라 멀리 나아가보시기를. 한 주의 끝에는 <달리는 무릎>에서 우렁우렁 울려 나오는 목소리와 나란히 또 다른 시작점에 이르기를.

4월의 문학웹진 LIM도 함께해주세요!

문학웹진 LIM 제작 후기 🌊

이번 문학웹진 LIM이 세상에 나오는 데 장우석 디자이너님(@jang.ws)과 오예슬 개발자님(@new.osc)이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웹 디자인계의 환상의 팀이라고 불릴만한 분들이시죠.

처음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레퍼런스가 있었으나 회의를 거쳐 군더더기를 없애고 작품과 작가 자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작가 사진이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작가를 소개하는 데는 소홀히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따로 '모아보기'라는 인덱스를 만들어 참여한 작가들의 소개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웹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독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종이만 쳐다보던 편집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베테랑 디자이너와 개발자 두 분께서 완벽에 가까운! 너무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디자이너님의 작업 후기도 살짝 공개합니다:

웹만의 특징(화사한 색 표현, 그를 활용한 인터랙션 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지나치게 트렌드를 반영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가 어떤 환경에서든 무리 없이 오랜 기간 그 빛을 잃지 않고 독자들과 만나는 곳이 되길 기대하며 디자인했습니다.

- 장우석 디자이너

디자이너님의 말처럼, 문학웹진 LIM이 그 빛을 잃지 않고 독자들과 만나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더 자주, 더 오래 문학웹진 LIM에 머물러 주세요 :)